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리드리히 니체 (문단 편집) ==== 자기긍정 ==== '''자기긍정''' >오늘날에는 누구나 자신의 소망과 가장 소중한 생각을 감히 말한다. 그래서 나도 지금 내가 나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 이해를 함에 있어 처음으로 내 마음을 스쳐가는 생각,—앞으로의 삶에서 내게 근거와 보증, 달콤함이 될 생각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나는 사물에 있어 필연적인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법을 더 배우고자 한다.'''—그렇게 하여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 Amor fati : 이것이 지금부터 나의 사랑이 될 것이다! 나는 추한 것과 전쟁을 벌이지 않으련다. 나는 비난하지 않으련다. 나를 비난하는 자도 비난하지 않으련다. 눈길을 돌리는 것이 나의 유일한 부정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언젠가 긍정하는 자가 될 것이다! >---- >― 『즐거운 학문』 여기서 쓰인 긍정(Bejahung)이란 부정의 반댓말이다. 즉 확인하고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니체는 기본적으로 귀족주의자였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적 의미의 귀족주의가 아니라 "정신의 귀족주의"를 말한다. 본인도 '어떤 사람이 귀족인가 아닌가'는 '어디에서 왔는가'(=혈통)가 아니고, '어디로 가는가'로 분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귀족은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사람이다. 달리 말해 자기 자신의 의욕을 긍정하는 인간이며, 또 자신의 의욕을 이루기 위해 자유롭게 사는 사람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니체는 인간과 도덕을 두 부류; 노예와 귀족으로 나눈다. 노예는 사랑과 희생을 미덕으로 삼아서, 되도록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며 주인에게 자신의 권리를 양보한다. 반면에 귀족은 자신의 욕망과 권리를 적극적으로 챙긴다. 또한 노예는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노예의 주인이다. 귀족은 노예와는 다르게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잘못되더라도 기꺼이 책임을 진다. 따라서 니체는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마음껏 드러내고 그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지려는 사람을, '정신의 귀족'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이 초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3가지로 나누고, 각각을 '낙타', '사자', '어린아이'에 비유하였다. '낙타'는, '~해야 한다.'로 상징되는 '용'에게 지배당한다. 낙타는 자신보다 더 큰 짐을 짊어지고 고통의 사막을 건너면서도 남(용)이 가르키는 방향에 자신의 방향을 맞추며 살아간다. 낙타는 금욕주의와 자기부정을 통해 살아가는 기독교적 가치관을 상징한다. 이러한 낙타는 사막이라는 고통을 겪으면서 점점 반항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사자'의 단계이다. '사자'는 '용(용이 상징하는 것: '해야 한다.')'의 권위와 가치에 의문을 품고 적극적으로 반항한다. 하지만 반항만 할 뿐이어서, 용이 사라진 세상에서는 아무런 역할을 지니지 못한다. 용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 바로 '어린아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 된다고 니체는 말한다. '어린아이'는 '해야 한다'는 용의 무시무시한 압력에도 잠시 뒤돌아서면 망각하며, 자신의 방향을 자기가 결정해서 삶(놀이)의 규칙을 입맛에 맞게 매일마다 바꾼다. '어린 아이'와 같이 스스로가 삶의 가치를 창조하며 이러한 삶 자체를 긍정하는 사람이,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Übermensch)', 즉 '자기자신을 극복한 사람'인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